배터리 '방해꾼'을 에너지로···차세대 배터리 가능성 높였다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8월 19일, 오전 08:58

[이데일리 강민구 기자]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진이 기존에 배터리 성능을 떨어뜨리는 ‘방해꾼’으로 여겨졌던 반응을 오히려 에너지 저장에 활용하고, 차세대 물 기반 배터리 구현 가능성을 높였다.

KAIST는 박선아 화학과 교수 연구팀이 금속과 유기 분자가 연결돼 미세한 구멍을 이루는 2차원 전도성 금속·유기 구조체를 이용해 배터리 안에서 전기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아연 이온과 양성자를 차례로 저장하는 새로운 전극 소재를 개발했다고 19일 밝혔다.

연구진 사진.(왼쪽부터)박선아 KAIST 교수, 박근찬 포항공대 학생, 이규원 포항공대 석사, 김강민 포항공대 학생.(사진=KAIST)
연구진 사진.(왼쪽부터)박선아 KAIST 교수, 박근찬 포항공대 학생, 이규원 포항공대 석사, 김강민 포항공대 학생.(사진=KAIST)
수계 아연이온전지는 물에 기반한 전해질을 사용하는 배터리다. 전해질은 배터리 안에서 이온이 이동하도록 돕는 물질이다. 수계 아연이온전지는 불이 붙을 위험이 비교적 낮고 가격이 저렴하다. 환경 부담도 적어 많은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차세대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아연 이온은 전하가 커 전극 안에서 빠르게 움직이기 어려워, 많은 에너지를 저장하면서 빠르게 충·방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양성자는 작고 빠르게 움직이지만, 너무 많이 반응하면 부산물이 생겨 아연 이온의 이동을 방해한다. 따라서 양성자는 배터리 성능을 떨어뜨리는 ‘방해꾼’으로 여겨져 반응을 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연구팀은 발상을 전환해 양성자 반응을 없애는 대신, 아연 이온과 양성자가 저장되는 순서를 조절해 모두 에너지 저장에 활용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이에 전극의 미세한 구멍 안에 양성자를 붙잡는 일종의 ‘저장 자리’인 아민 작용기 를 넣었다. 아민 작용기가 특정 전압에서 양성자를 저장하도록 설계해 아연 이온이 먼저 저장되고, 그다음 양성자가 추가로 저장되도록 했다.

원리는 빈 병에 큰 자갈을 먼저 넣고, 자갈 사이의 빈틈을 고운 모래로 채우는 것 과 비슷하다. 비교적 큰 아연 이온을 먼저 저장하고 이후 작은 양성자를 추가로 저장해 하나의 전극을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전압이 높은 구간에서는 아연 이온이 먼저 저장되고, 전압이 더 낮아지면 양성자가 추가로 저장됐다. 연구팀이 개발한 전극 소재를 분석한 결과, 아연 이온과 양성자가 서로 다른 전압 영역에서 차례로 에너지 저장에 참여했다. 특히 아연 이온이 먼저 저장된 뒤 양성자가 반응하도록 해 두 저장 과정이 서로 방해하는 것도 줄였다.

분석 결과, 충·방전 속도를 16배 높인 빠른 조건에서도 처음 저장 용량의 절반에 가까운 46.9%를 유지했다. 일반적으로 배터리는 충·방전 속도가 빨라질수록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양이 줄어드는데, 이번 전극은 빠른 충·방전에서도 저장 능력을 유지했다. 또 500회 이상 빠른 충·방전을 반복한 뒤에도 안정적인 성능을 발휘했다.

연구팀은 다양한 X-선 분석법을 통해 아연 이온이 먼저 저장되고, 이후 양성자가 추가로 저장되는 과정을 확인했다. 또한 양성자를 저장했다가 다시 내보내는 과정이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박선아 교수는 “기존에는 배터리 성능을 떨어뜨릴 수 있는 ‘방해꾼’으로 여겨졌던 양성자를 오히려 에너지를 더 저장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원리를 다양한 전극 소재에 적용해 더 많은 에너지를 빠르게 저장하는 배터리 개발에 활용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화학 분야 국제 학술지 ‘켐(Chem)’에 지난 7월 7일자로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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