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中 바이오텍 쇼핑하는 빅파마...바이오는 '각자도생'
최근 글로벌 제약업계에서는 아스트라제네카와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가 기업가치 약 4000억달러(약 570조원) 규모의 합병설에 시장이 들썩였다. 합병이 성사되면 매출 기준 세계 최대, 시가총액 기준 세계 4위 제약사가 탄생한다. 글로벌 빅파마조차 생존과 성장을 위해 몸집을 합치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이 같은 빅딜은 각자도생에 내몰린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국내 바이오기업 상당수는 후기 임상까지 수행할 자금력이 부족해 조기 기술이전에 주력한다. 단기적인 생존과 투자금 회수에는 도움이 되지만 임상·인허가·상용화 역량을 자체적으로 축적해 글로벌 제약사로 성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기업 간 M&A를 통해 자본과 연구개발 역량을 결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내 상장 바이오기업들의 재무 여건상 인수에 나설 자금력이 부족하고, 빅파마 입장에서도 필요한 기술만 라이선스로 확보할 수 있는데 추가 임상비용과 연구조직 유지비, 상장·규제 대응 비용까지 부담하며 회사를 통째로 살 유인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한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기술의 가능성만으로 회사를 통째로 사는 시대는 아니다”며 “한국 바이오텍도 임상 단계에서 PoC를 입증한 자산을 늘리지 않으면 M&A 후보군 자체가 나오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중국에서는 글로벌 빅파마가 바이오텍을 통째로 인수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2023년 말부터 2024년 사이 그라셀바이오테크놀로지스(Gracell Biotechnologies), 프로파운드바이오(ProfoundBio), 바이오테우스(Biotheus)가 각각 아스트라제네카, 젠맙, 바이오엔테크에 인수됐다.
이 같은 차이는 결국 신약 파이프라인 경쟁력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한국보다 자체 신약 파이프라인이 훨씬 풍부한 데다 임상 단계에서 개념입증(PoC)을 확보한 자산도 많다. 글로벌 의약품 데이터업체 사이트라인(Citeline)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중국이 개발 중인 의약품 파이프라인은 7141개로 한국(3159개)의 약 2.3배에 달한다.
◇외형 확대보단 시너지…K바이오 '성장형 M&A' 하려면
해외 기업에 피인수되는 것이 쉽지 않다면 국내 기업 간 M&A가 대안이 될 수도 있다. 국내에서도 유의미한 M&A 사례는 있었다. 오리온(271560)은 2024년 5485억원을 투입해 리가켐바이오(141080)사이언스 지분 25.73%를 확보했고, 최근 TKG휴켐스와 IMM 계열 투자기구는 에이프릴바이오(397030)에 3468억원을 투자했다. 글로벌 기술이전 성과를 쌓은 신약개발사에 대기업의 자금력과 사업화 역량이 결합한 사례다. 동구바이오제약(006620)도 큐리언트(115180) 유상증자에 참여해 최대주주에 오른 뒤 투자를 확대했다.
다만 국내에서 대형 M&A가 이어지기 어렵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수조원을 동원할 매수자가 많지 않고 창업자와 오너가 경영권을 내려놓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어서다. 한미약품(128940)그룹과 OCI(456040)그룹의 통합도 오너 일가의 이해관계와 경영권 분쟁이 불거지며 무산됐다. 제네릭 중심 제약사들이 기존 구조로도 일정한 수익을 내며 생존할 수 있다는 점도 합병에 나설 유인을 약화시키는 요소다.
업계에서는 제약사끼리 외형만 합치는 M&A보다 자본과 사업화 역량을 가진 제약사와 신약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바이오벤처의 결합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인다. 제약사는 M&A를 통해 신약 파이프라인과 연구역량을 확보하고, 바이오벤처는 기업공개(IPO) 의존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개발자금을 마련하는 상생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이다.
윤선주 에이피트바이오 대표는 “양측의 부족한 역량을 보완해야 실질적인 시너지가 생긴다”며 “제약사의 바이오벤처 인수나 전략적 투자 비용을 R&D 투자 비용으로 폭넓게 인정해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인증될 수 있게 하면 M&A에 나설 유인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M&A 잠재 후보군' 국내 바이오텍은?
그렇다면 국내외에서 M&A를 고려할 만한 국내 바이오기업 후보군으로는 어떤 곳들이 있을까? 업계 안팎에서 M&A 피인수 가능성이 높은 바이오기업으로 가장 먼저 거론된 곳은 알테오젠(196170)이었다.
알테오젠은 정맥주사 의약품을 피하주사 제형으로 전환하는 인간 히알루로니다제 플랫폼 ‘ALT-B4’를 보유하고 있는 바이오텍이다. 특정 신약후보물질 하나가 아닌 여러 의약품에 반복 적용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글로벌 기술이전 성과가 축적됐으며, 상업화도 진전되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요인이라고 평가됐다. 단 시가총액이 5일 기준 15조원에 육박하는데다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고려할 경우 인수비용 부담이 상당하다는 점은 제약 요인으로 지적된다.
IB업계 관계자는 "(국내외 기업에서 M&A를 고려할 만한 바이오텍으로는) 플랫폼 기업인 알테오젠 정도 있을 것 같다"면서도 "시가총액이 10조원이 넘기 때문에 그 만한 비용을 들여 통째로 살만한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빅파마 입장에선 필요한 기술만 라이선스 계약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막대한 인수대금을 들여 기업 전체를 사들일 경제적 유인이 적다는 얘기다.
기업가치가 조 단위로 커질수록 현실적인 인수 주체는 국내보다 해외 자본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내에는 수조원 규모의 거래를 감당할 전략적 투자자(SI)나 재무적 투자자(FI)가 많지 않은 데다, 대형 제약사들 역시 대규모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설 여력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휴젤(145020)과 클래시스(214150)가 거론된다. 휴젤은 최대주주인 GS그룹 측의 투자금 회수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지만 기업가치가 조 단위에 달하는 만큼 국내에서 마땅한 원매자를 찾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클래시스 역시 기업가치가 3~4조원 수준으로 커지면서 국내 인수 후보군보다는 글로벌 사모펀드(PEF)나 해외 전략적 투자자와의 거래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의 경우 몸집이 커질수록 결국 해외 자본과의 딜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미용의료기기 기업 제이시스메디칼은 2024년 프랑스계 헬스케어 전문 PEF인 아키메드(ARCHIMED)에 약 9900억원 규모로 인수된 뒤 자진 상장폐지 절차를 밟았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사업화 경쟁력을 갖춘 국내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일수록 국내보다 해외 자본이 더 현실적인 인수 주체가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신약개발사 중에선 독자적인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바이오 기업들이 잠재적인 M&A 후보군으로 거론됐다. 에이비엘바이오(298380), 올릭스(226950), 오름테라퓨틱(475830), 디앤디파마텍(347850) 등은 각 분야에서 차별화된 원천 플랫폼을 확보하고 글로벌 기술거래나 공동개발 경험을 축적해온 기업들이라는 공통점이 부각됐다.
플랫폼 기업이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특정 신약후보물질의 성공 여부에 기업가치가 전적으로 좌우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기반 기술로 여러 후보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인수자는 파이프라인과 연구인력, 후속 개발 역량까지 함께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플랫폼 기술의 경쟁력이 곧바로 기업 인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빅파마들이 관심을 보일 만한 국내 바이오텍들이 있겠지만 기술적 매력과 실제 인수 가능성은 별개라는 점은 인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