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해도 괜찮다”…정부, 국가 R&D ‘점수·등급제’ 없앤다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8월 31일, 오후 04:49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정부가 국가 연구개발(R&D) 과제평가 방식을 전면 개편한다. 목표 달성도를 중심으로 점수와 등급을 매기는 평가에서 벗어나 도전적인 연구와 혁신적 성과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체계로 전환한다.

특히 혁신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연구 과정에서 의미 있는 데이터와 지식을 확보했다면 우수과제로 인정한다. 반면 연구비 부정 사용이나 연구부정, 협약 의무 미이행 등 불성실한 연구에는 연구비 환수와 국가 R&D 참여제한 등 강력한 책임을 묻는다.

급변하는 기술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연구 도중 목표를 변경할 수 있는 ‘무빙타깃(Moving Target)’ 제도도 2027년부터 전면 도입한다. 연구자가 환경 변화에 맞춰 연구 방향을 신속하게 수정할 수 있도록 관련 절차도 대폭 간소화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31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6년도 국가연구개발 행정제도개선(안)’을 마련해 산업통상부, 중소벤처기업부, 기후에너지환경부 등 관계부처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번 개선안은 온라인 창구와 현장 간담회 등을 통해 수렴한 총 349건의 현장 의견을 바탕으로 마련됐다. 지난 26일 제8회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 심의·의결을 거쳤으며, 과기정통부는 4개 분야 12개 핵심과제를 올해 하반기부터 추진한다.

“실패해도 괜찮다”…정부, 국가 R&D ‘점수·등급제’ 없앤다
◇점수·등급제 폐지…‘도전적 실패’도 우수과제로 인정

가장 큰 변화는 과제평가 체계다.

정부는 지난 7월 결과 중심의 등급제·점수제를 폐지한 데 이어, 오는 10월까지 혁신적 성과를 촉진하는 새로운 과제평가 체계를 마련한다.

앞으로는 단순히 당초 목표를 달성했는지를 따지기보다 학문적·기술적·산업적 파급효과가 큰 성과를 낸 과제를 중심으로 우수과제를 선정하고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특히 혁신적 목표에는 미달했더라도 연구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거쳐 탁월한 데이터와 지식을 창출한 ‘우수도전 과제’도 우수과제로 인정한다. 선정된 과제에는 후속 연구 연계와 정부포상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할 예정이다.

반대로 법령 위반, 협약 의무 미이행, 연구부정 등 수행 과정이 불성실한 과제는 ‘부적절 과제’로 분류한다. 연구비 환수와 국가 R&D 참여제한 등 엄격한 제재를 적용한다.

◇연구 중 목표 바꾼다…‘무빙타깃’ 전면 도입

연구자가 연구 도중 목표를 신속하게 수정할 수 있는 ‘무빙타깃’ 제도도 본격화한다.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분야의 기술 주기가 빠르게 짧아지는 상황에서 연구를 시작할 당시의 목표를 끝까지 고수하는 것이 오히려 연구 성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연구 진행 중 글로벌 기술환경이나 시장 상황 등이 급변하면 연구목표를 유연하게 변경할 수 있도록 관련 절차를 대폭 단축한다.

목표 변경 승인 여부에 대한 범부처 가이드라인은 네거티브 방식으로 마련한다. 연구자가 일일이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기보다 변경이 제한되는 경우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방식이다.

◇연구비 자율성 확대…연구수당은 개인 인건비 100% 이내

연구비 집행 자율성도 높인다.

장비 수급 지연으로 연구에 차질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존 ‘단계종료일 2개월 전까지’ 완료해야 했던 연구시설·장비 도입 시기 제한을 ‘전체 과제종료일 일정 기간 이전’으로 완화한다.

단계 종료 후 다음 단계 착수까지 행정절차가 지연되는 경우에는 단계 종료 시점에 남은 직접비 잔액을 자동 이월할 수 있도록 한다. 단계평가 결과가 확정되기 전이라도 필수 인건비 등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연구수당은 특정 연구자에게 과도하게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한 기준을 새로 마련한다.

현행 총액 상한인 전체 인건비의 20%와 연구자 1인당 최대 70% 배분 기준은 유지한다. 여기에 과제별 본인 인건비 계상액의 100% 이내라는 개인별 상한을 새로 둔다.

◇정산·연차보고서 간소화…국제공동연구 IP 보호 강화

연구 현장의 행정 부담도 줄인다.

부처와 회계법인마다 달랐던 연구비 정산 기준을 통일하기 위해 범부처 표준 정산 가이드와 연구비 인정·불인정 사례집을 제작·배포한다.

1차 연도 또는 최종 연도의 협약 기간이 6개월 미만인 경우에는 다음 연도 연차보고서 등에 통합해 처리할 수 있도록 관련 절차도 간소화한다.

국제공동연구 관리는 오히려 강화한다.

해외기관으로 송금하는 연구비의 사용실적 관리와 점검을 강화하고, 해외기관과 협약을 체결할 때 국내 연구기관의 지식재산권(IP) 등 연구성과에 대한 권리가 보호될 수 있도록 전주기 지원을 확대한다.

과기정통부는 오는 9월부터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시행령’ 등 관련 법령과 규정 개정에 착수한다. 올해 하반기 제도 정비를 거쳐 개선된 제도는 2027년부터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박인규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대한민국 R&D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연구자가 과감하고 도전적인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자율적 연구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라며 “불필요한 관행을 과감히 혁파하고 현장에서 즉시 체감할 수 있는 지원체계를 구축해 ‘신뢰와 책임 기반의 혁신 연구 생태계’를 속도감 있게 완성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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