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로봇은 옛말”…휴머노이드, 이제 ‘얼마나 일하나’ 경쟁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September 23일, PM 03:01

[이데일리 신영빈 기자] 로봇이 사람처럼 걷는 장면에 환호하던 단계는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이제는 그 로봇이 현장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얼마나 오래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느냐에 관심이 모인다.

22~2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휴머노이드 서밋 서울 2026’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발표에 나선 기업들은 로봇의 두뇌와 손, 실세계 데이터, 현장 신뢰성을 상용화의 핵심 요소로 꼽았다.

로보티즈가 22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휴머노이드 서밋 서울 2026’에서 세미 휴머노이드 ‘AI 워커’를 선보였다. (사진=신영빈 기자)
로보티즈가 22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휴머노이드 서밋 서울 2026’에서 세미 휴머노이드 ‘AI 워커’를 선보였다. (사진=신영빈 기자)
◇로봇 몸체보다 ‘AI 두뇌’ 중요성 대두

알리 아가 필드AI 최고경영자(CEO)는 특정 하드웨어보다 여러 로봇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범용 두뇌’를 강조했다. 그는 “휴머노이드가 적합한 해법이면 휴머노이드를 쓰고, 사족보행 로봇이 맞으면 그것을 쓴다”고 말했다.

필드AI의 AI 두뇌는 현재 30종이 넘는 로봇 플랫폼에 적용됐다. 지도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정해진 경로 없이도 움직이는 것을 목표로 하며 최근에는 대형 차량이 사람 개입 없이 35㎞ 넘게 주행한 사례도 공개했다.

손끝 경쟁도 치열하다. 류중희 리얼월드 대표는 CJ대한통운 물류 현장을 사례로 들며 실제 현장에서는 다뤄야 할 물품이 200종을 넘고 이동 속도도 실험환경보다 훨씬 빠르다고 설명했다. 리얼월드는 이를 다섯 손가락 로봇 손으로 다루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리얼월드의 차세대 로보틱스 파운데이션 모델(RFM) ‘RLDX-2’에는 사람의 3차원(3D) 움직임과 시간, 촉각 등 물리신호를 함께 학습하는 ‘4D+’ 데이터를 적용한다. 작은 나사를 집어 조립하는 정밀작업은 기존 비전언어행동(VLA) 모델만으로 한계가 있어 물체의 3D 형태를 파악하고 어디를 어떻게 잡을지 판단하는 별도 기술도 개발 중이다.

로보티즈는 다양한 AI 모델을 쉽게 적용하는 플랫폼 전략을 내세웠다. 김병수 대표는 자체 소프트웨어 ‘사이클로(CYCLO)’에서 약 20종의 RFM을 시험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초기 스마트폰이 전용 카메라나 음악기기보다 성능이 떨어졌지만 다양한 앱을 흡수하며 범용 플랫폼이 된 것처럼 휴머노이드도 비슷하게 발전할 것으로 내다봤다.

산업현장에서는 기존 작업환경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들어가느냐도 중요하다. 마이클 페리 페르소나AI 커머셜 전략 총괄은 “용접공은 용접만 하지 않는다”며 휴머노이드도 용접뿐 아니라 철판 위치 조정, 케이블 관리, 작업 결과 확인 등 여러 일을 이어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페리 총괄은 “휴머노이드가 더 나은 것은 인간의 형태가 모든 로봇에 완벽해서가 아니라 특정 산업 문제를 풀기에 적합한 해법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리얼월드가 22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휴머노이드 서밋 서울 2026’에서 로봇 핸드를 활용해 다양한 물건 집기 시연을 선보였다. (사진=리얼월드)
리얼월드가 22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휴머노이드 서밋 서울 2026’에서 로봇 핸드를 활용해 다양한 물건 집기 시연을 선보였다. (사진=리얼월드)
◇전시장에서 공장으로…상용화 숫자 경쟁

이 같은 변화는 글로벌 휴머노이드 업계에서도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피규어AI의 휴머노이드는 BMW 스파르탄버그 공장에서 11개월 동안 1250시간 이상 가동되며 9만개가 넘는 부품을 처리했고 3만대 이상의 차량 생산 과정에 참여했다. 올해는 차세대 모델을 투입해 카트를 끌고 이동하면서 부품을 다루는 복합 작업으로 범위를 넓혔다.

애질리티로보틱스의 ‘디짓’도 물류현장에서 누적 6만5000시간 이상 운용됐다. GXO 물류센터에서는 10만개가 넘는 토트를 옮겼고 작업 정확도는 약 98%를 기록했다. 회사는 이를 바탕으로 이달 차세대 로봇을 공개하며 대규모 상업 배치로 넘어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앱트로닉도 휴머노이드 ‘아폴로 2’를 실제 고객 현장과 자체 ‘로봇 파크’에 배치해 제조·물류·유통 작업 데이터를 대규모로 수집하고 있다. 이 데이터는 구글 딥마인드와 공동으로 차세대 로봇 AI 모델을 학습하는 데 활용된다.

테슬라는 한발 더 나아가 양산 체제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 공개한 옵티머스 3세대를 첫 대량생산용 설계로 규정하고 연말 생산 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프리몬트에는 연간 100만대 규모의 1세대 생산라인을 준비 중이다.

업계의 경쟁 기준도 자연스럽게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걷기와 균형제어 등 하드웨어 성능이 주목받았다면 이제는 새로운 작업을 얼마나 빨리 학습하는지, 실제 투자비를 회수할 만큼 가동률을 높일 수 있는지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류중희 리얼월드 대표는 “피지컬AI는 과학적으로 더 뛰어난 모델을 만드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며 “실제 작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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