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웅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은 30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취임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청사진을 제시했다.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기술 패러다임이 빠르게 바뀌고, 과제중심연구제도(PBS) 등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환경에 변화가 이뤄지는 가운데 기관 차원의 변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박세웅 ETRI 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사진=ETRI)
무엇보다 PBS가 단계적으로 폐지되는 만큼 이를 기회 요소로 봤다. 연구사업 구조를 기존 경쟁적 수탁과제 중심에서 기관 고유 임무와 국가 전략임무 중심의 ‘임무형 R&D 체계’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22% 수준인 임무형 연구 비중을 2030년까지 90% 수준으로 확대하고, 경쟁형 수탁 연구는 중요·필수 정부 수탁사업 등을 중심으로 조정한다. 이를 위해 출연금 인건비 비중도 단계적으로 높여 연구자들이 과제 확보 경쟁보다 연구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박 원장은 “그동안 출연연 연구자들이 과제를 따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했다면 앞으로는‘어떤 과제를 따올 것인가’가 아니라‘국가가 ETRI에 맡긴 임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며“ETRI가 해야만 하고 연구원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구를 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신설한 전략연구기획단을 중심으로 전사적인 통합기획체계를 구축한다. 연구부서별 칸막이를 낮추고 국가 임무 중심의 대형과제를 기획하는 한편, 공정하고 투명한 기획 프로세스를 마련할 예정이다. 국가 전략기술뿐 아니라 사회 난제, 지역 균형성장, 글로벌 협력, 출연연 융합 등으로 전략기획의 영역도 확대한다.
특히 연구역량에서 선택과 집중을 강화한다. 기관의 역할과 책임(R&R)은 AI·피지컬AI·입체통신·공간결합·AI디지털전환으로 제시하고, 전략집중형 R&D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AI 분야에서는 멀티모달 파운데이션 모델과 AI 연구동료, AI-무선접속망(RAN)과 6G를 결합한 AI 고속도로,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RFM)을 기반으로 한 피지컬 AI 로봇지능 등을 핵심 연구 축으로 육성한다.
특히 AI 연구의 핵심 기반인 컴퓨팅 인프라를 강화한다. 원내 GPU 프라이빗 클라우드(Private Cloud)를 확충하고, 출연연 간 그래픽처리장치(GPU) 공동 활용 기반을 마련하고 국가 초고성능 컴퓨팅 전문센터 지정을 추진하는 등 ETRI의 AI 연구 인프라를 국가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체계로 발전시킬 방침이다.
박 원장은“모든 것을 조금씩 잘하는 연구기관보다는 국가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ETRI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독보적인 코어 기술, 이른바‘필살기’를 확보해야 한다”며 “강점은 더 강하게 만들고 아직 기술적 공백이 있는 분야에는 과감히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조직이나 분야의 경계를 넘어 연구하는‘경계없는 플레이어(Borderless Player)’를 집중 육성하고, 선정 연구자에게 연구 시간의 80%를 자율·몰입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차세대 신진연구자 육성 프로그램과 연구자 평가·보상체계도 지속적으로 개선한다.
박 원장은 ETRI를 ‘개방형 R&D 플랫폼’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출연연과 대학, 기업이 각각 연구과제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국가적 문제를 중심으로 연구 주체들이 모이는 교류형 연구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AI·통신 등 핵심 기술 분야의 외부 전문가를 ‘특임고문’으로 활용하고, 연구 분야별 기술 자문위원 제도와 우수 대학교수의 안식년 방문 연구제 등을 도입한다. 학생 연구자의 연구 참여와 멘토링, 해외 우수 연구기관 파견 공동연구도 확대할 방침이다.
또 출연연 간 전략연구협의체를 중심으로 다자간 융합 대형 프로젝트를 공동 기획하고 글로벌 빅테크와의 선행 공동연구도 확대할 계획이다.
박 원장은 “AI와 피지컬 AI 시대의 연구는 어느 한 연구기관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며 “ETRI가 모든 것을 소유하는 연구기관이 아니라 최고의 연구자와 기술, 기업이 모이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과거 ETRI가 TDX, DRAM, CDMA와 같은 국가적 성과를 만들어낸 만큼 이와 같은 성과를 AI 시대에 만들도록 단기적인 성과나 과제 수주에 매몰되지 않고 10년, 20년 뒤 대한민국이 필요로 할 기술을 먼저 준비하는 연구원을 만들겠다고 피력했다.
박 원장은 “ETRI를 전 주기적 AI·DX R&D 플랫폼이자 대한민국 국가 지능화 혁신 엔진으로 발전시키고, 인간 중심의 가치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상생 경영을 펼치겠다”며 “ETRI 구성원 모두가‘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연구자’라는 자부심을 갖도록 만들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