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양자기술, 中보다 돈 부족 아냐…문제는 사람”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12일, PM 07:06

[이데일리 안유리 기자] “국가 규모를 고려하면 중국과 비교하더라도 한국이 양자 분야에 투입하는 연구비가 적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차이를 느끼는 부분은 인력 확보입니다.”

김기환 기초과학연구원(IBS) 트랩이온 양자과학 연구단장은 이데일리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 양자기술 경쟁력의 시급한 과제로 인력 확보를 꼽았다.

김기환 트랩이온 양자과학 연구단장(사진=기초과학연구원)
김기환 트랩이온 양자과학 연구단장(사진=기초과학연구원)
김기환 단장은 트랩이온 기반 양자컴퓨팅 및 양자시뮬레이션 분야의 석학이다. 지난 15년간 중국 칭화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지난해 12월 한국으로 돌아와 IBS 트랩이온 양자과학 연구단 초대 단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부임 이후 현재까지 본격적인 실험에 앞서 연구 기반을 마련하는 데 집중했다. 온도, 진동, 청정도에 민감한 트랩이온 실험실 환경을 조성하고, 기자재 확보 등 연구 기반을 다지는데 집중해왔다.

김 단장은 “연구비 규모는 국가 전체의 규모를 고려하면 두 나라 사이에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연구자에게 주어지는 자율성이나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측면에서도, 적어도 제가 몸담고 있는 기관에서는 지금까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인력이다. 양자컴퓨팅 연구를 확대할 연구자뿐 아니라 실험 장비와 부품을 개발하고 산업 생태계를 키울 인력 전반이 부족하다.

김 단장은 “저뿐 아니라 한국에서 양자 연구를 하시는 많은 분들이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라면서 “이런 상황을 보면서, 연구단이 연구 성과를 내는 것과 함께 인력 양성에도 적극적으로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됐다”라고 했다.

인력 양성 정책 역시 단순히 석·박사 배출 숫자를 늘리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대학에서 키운 인력이 연구소의 대형 연구 시설을 활용하고, 이후 국내 연구소와 기업에서 경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연결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김 단장은 “양성된 인재가 생태계 안에 머물러야 다음 세대를 키우는 선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다”라면서 “이런 측면에서 양자 분야에 특화된 새로운 국가 양자연구소를 설립하는 방안도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소부장 생태계 양성의 해법으로도 연구 현장과의 소통을 제안했다. 그는 “전 세계적인 기술 흐름을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국내 소부장 기업들과 공유할 수 있는 소통 창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연구 현장에서 어떤 장비와 부품이 필요하고 어떤 성능이 요구되는지를 기업들이 정확히 알아야 투자와 개발 방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00여개 큐비트 범용 제어…2차원 이온 배열 도전

김 단장이 이끄는 IBS 트랩이온 양자과학 연구단은 현재 100여 개 수준의 큐비트를 범용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양자컴퓨팅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단순히 큐비트 숫자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각각의 큐비트에 원하는 양자 연산을 자유롭고 정확하게 수행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목표이다.

김 단장은 “연구단이 현재 가장 집중하고 있는 목표는 100여 개 수준의 큐비트를 범용적으로(universal) 제어할 수 있는 양자컴퓨팅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면서 “큐비트의 규모를 키우는 것과, 그 큐비트들에 대해 원하는 양자 연산을 자유롭고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함께 달성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트랩이온을 비롯한 여러 플랫폼에서 100여 개의 큐비트를 이런 수준으로 다룰 수 있는 시스템은 아직 많지 않다”라면서 “이를 빠른 시간 안에 구현할 수 있다면, 한국의 트랩이온 양자컴퓨팅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기여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라고 강조했다.

김기환 트랩이온 양자과학 연구단장(사진=기초과학연구원)
김기환 트랩이온 양자과학 연구단장(사진=기초과학연구원)
연구단은 트랩이온 방식의 난제인 확장성 문제에도 도전한다. 트랩이온 양자컴퓨터는 이온의 진동을 이용해 큐비트 사이에서 연산하는데, 이온 숫자가 늘어날수록 진동 모드가 복잡해 제어가 어려워진다. 연구단은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이온을 기존의 1차원 사슬 형태가 아닌 2차원 결정 형태로 배열하는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김 단장은 “이온들을 2차원 결정(crystal) 형태로 배열해 하나의 트랩 안에 담을 수 있는 이온의 수를 늘리고, 개별 이온에 대한 정밀한 제어를 통해 진동모드 관리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2차원 배열은 이온을 일렬로 늘어놓는 기존의 1차원 사슬 방식에 비해 이온 수를 늘리는 데 유리할 것으로 봅니다”라며 “이온을 이동시키는 방식은 이동과 이후의 냉각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데, 저희 방식은 이런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라고 했다.

◇“양자클러스터, 물리적 거리보다 활발한 협력 구조가 중요”

최근 정부가 적극 추진 중인 양자클러스터 전략에 대해서는 장기적 관점을 강조했다. 김 단장은 “캐나다 워털루·토론토의 퀀텀 밸리는 연구에서 출발해 사업화로 이어진 대표적인 양자 생태계로 자주 거론되는데, 퀀텀 밸리는 20년 넘게 꾸준한 투자와 노력이 쌓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설명했다.

김 단장은 “한국도 대전에는 IBS를 비롯해 양자 연구 역량이 모여 있고, 서울에는 수요 산업과 기업, 투자 기반이 집중되어있다. 흥미롭게도 워털루-토론토 사이 거리는 서울-대전과 비슷하고, 연구와 산업이 두 도시에 나뉘어 있는 상황도 비슷하다”라면서 “결국 중요한 것은 물리적 거리보다, 연구자와 기업, 투자자가 활발하게 오가며 협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김 단장은 실용적인 양자컴퓨터가 산업 현장에 자리 잡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신 특정 문제에 특화한 ‘아날로그 양자 시뮬레이션’에서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고전컴퓨터를 넘어서는 성과가 나올 가능성을 높게 봤다.

아날로그 양자 시뮬레이션은 모든 종류의 계산을 수행하는 범용 양자컴퓨터와 달리 특정 물리계를 양자 시스템으로 직접 구현해 그 성질을 알아내는 방식이다. 그는 “특히 양자화학에서 중요한 분자들의 성질을 이해하는 문제나, 스핀 모델을 통해 물질의 특성을 이해하는 문제에서 아날로그 양자 시뮬레이션이 가장 먼저 실용적인 양자우위를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김 단장은 “5~10년 안에 어떤 산업 문제에서 실용적인 성과가 나올지 예측하기는 어렵다”라면서도 “우리가 그 과정을 어떻게 인내심을 가지고 견뎌 나갈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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