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엽 한국정보통신법학회장(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은 최근 제기되는 ‘AI 감속론’을 안전성 논쟁만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기술 개발의 위험을 줄이려는 움직임과 함께 막대한 투자비를 통제하고 수익성을 확보하려는 빅테크의 계산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AI 투자 거품론 역시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 과정으로 봤다. 정부가 추진하는 ‘모두의 AI’와 프런티어 AI 개발 사업도 지속하려면 민간 투자를 끌어낼 수익 모델과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AI 확산에 따른 청년 신규 채용 위축을 우려하며 전 국민 AI 교육과 새로운 직군 육성도 주문했다.
이성엽 한국정보통신법학회장(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 사진=본인 제공
이 회장은 AI 감속론의 배경에 안전성뿐 아니라 투자 회수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AI가 위험하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업공개(IPO) 연기나 투자 대비 수익의 불확실성 속에서 빅테크들이 비용 구조를 관리하려는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2027~2030년 AI 인프라에 약 6조달러가 추가 투자될 것으로 전망했다. 투자비용과 금융비용 등을 회수하려면 2030년까지 8조5000억달러의 매출이 필요하지만, 실제 데이터센터 관련 매출은 최대 3조6000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추산했다.
AI 시장의 주도권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만큼 투자 경쟁도 쉽게 멈추기 어렵다는 게 이 회장의 진단이다. 그는 “아마존이나 구글의 과거 사례에서 보듯 자본주의에서는 하나의 기업이 독점을 완료하면 투자가 둔화할 수 있다”며 “하지만 지금은 오픈AI, 구글, 앤스로픽 등 어느 기업이 시장을 장악할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장을 석권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더 이상 기술 개발을 하지 않기로 합의하는 것은 자본주의 속성과 맞지 않는다”며 “미국 정부 역시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벌려야 하는 상황에서 민간 기업들의 개발 중단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거품 논란도 투자 규모만으로 판단하기보다 AI가 실제로 돈을 낼 만큼의 효용을 제공하는지가 관건이라고 봤다. 이 회장은 “지금의 투자는 거품이라기보다 시장을 석권하기 위한 과정”이라며 “한두 개 업체로 시장이 정리되고, 기업과 개인이 AI를 통해 충분한 효용을 느끼며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생긴다면 거품 논란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AI 투자 속도가 둔화하면 한국에는 기회와 위험이 함께 나타날 수 있다. 그는 “미국 빅테크가 자체적으로 투자를 늦출 때 한국 등 3위권 국가들이 치고 나간다면 격차를 좁힐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도 “반대로 미국이 기술 개발 중단을 명분으로 우방국에도 이를 강요한다면 기술 격차는 유지된 채 국내 반도체 수요만 떨어져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모두의 AI, 수익 모델 없으면 지속하기 어려워”
이 회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AI 사업에도 실질적인 수익 구조와 민간 투자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국민 AI 서비스인 ‘모두의 AI’에 대해 그는 “현재는 정부가 GPU 등을 지원하며 컨소시엄을 이끌고 있지만, 서비스가 장기적으로 성공하려면 기업들이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열어줘야 한다”며 “정부가 계속 무료 봉사만 요구하면 기업들이 막대한 업데이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고 서비스가 정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AI 데이터센터(AIDC)와 프런티어 AI 모델 개발 역시 실제 수요와 비용 부담, 투자 회수 가능성을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AIDC 투자 규모가 막대한데 과연 해외 빅테크들이 모두 와서 써줄 만큼 우리 시장 수요가 확실한지 리스크가 크다”며 “막연한 청사진으로 섣불리 거액을 투자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유연한 글로벌 펀딩 전략을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독자적인 프런티어 AI 모델 개발에 대해서는 국가 안보 차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민간의 투자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 회장은 “국방이나 안보를 고려하면 앤스로픽, 오픈AI 등과 경쟁할 수 있는 독자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가령 공공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정부가 30%, 민간이 70%를 투자한다면 참여 기업들이 수조원을 부담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프런티어급 AI 모델 개발에는 2만~3만장의 GPU와 연봉 30억~40억원 수준의 고급 AI 인력이 필요하다는 업계 추산도 있다. 전체 개발비가 약 20조원에 이를 수 있는 만큼 민간의 부담을 줄일 세제 지원과 확실한 수요처 확보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정부가 AIDC 인프라를 대규모 사업으로 추진한다면 클라우드 세액공제나 조세특례 등 실질적인 혜택을 충분히 줘야 한다”며 “프런티어급 모델 개발 역시 공공이나 국방 분야 우선 사용권 같은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성엽 한국정보통신법학회장(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
AI 고용 충격은 기존 인력의 해고보다 신규 채용 축소로 먼저 나타날 수 있다는 게 이 회장의 우려다.
그는 “기업들이 기존 인력을 해고하기 어려운 국내 노동 구조상 결국 20대 청년들의 신규 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구조적 실업은 상당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AI 관련 신규 직군을 육성하고 교육 체계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AI 기술과 윤리를 동시에 이해하는 AI 감시·모니터링 전문가 등 새로운 직군을 국가 차원에서 길러내야 한다”며 “이에 맞는 자격증 구조와 대학 교육 시스템 재편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국민이 AI를 능숙하게 활용하도록 하는 교육도 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회장은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 ‘국민 PC 보급’ 운동으로 정보화 강국의 기반을 다졌듯 지금은 전 국민이 AI를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잘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EBS 등에서 대대적으로 AI 활용 교육 방송을 진행하고, 정부 공인 강사를 육성해 청년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성엽 한국정보통신법학회장(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
AI 기본법 개정에 대해서는 법 시행 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를 살피며 규제 체계와 적용 범위를 합리적으로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무조건 ‘개문발차’ 식으로 법을 통과시켜 놓고 규제 때문에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며 “무리하게 서두르기보다 합리적인 개정 방향을 논의해 제대로 된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AI 모델과 서비스를 실제 시장에 배포하는 사업자에 대한 규율을 구체화하고, 산업 현장의 현실과 규제의 실효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