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커 카드에 3억원 베팅"…팬덤이 키운 '수집경제'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19일, AM 05:04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페이커 1번 카드, 3억원에 삽니다.”

프로게이머 ‘페이커’ 이상혁 선수의 한정판 카드 한 장에 최근 3억원의 구매 희망가가 붙었다. 카드 한 장을 사기 위해 억대 금액을 제시한 것이다.

포켓몬·원피스 등 캐릭터를 중심으로 형성된 트레이딩 카드 게임(TCG) 수집 열풍이 e스포츠로 번지고 있다. 카드를 모아 게임하는 것을 넘어 좋아하는 선수·캐릭터와 희귀 번호가 붙은 카드를 직접 사고파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팬덤 소비가 하나의 ‘수집경제’로 커지는 모습이다.

라이엇게임즈의 ‘리프트바운드×2025 월드 챔피언 T1 시그니처 에디션’. T1의 월드 챔피언십 6회 우승과 3연속 우승을 기념해 제작된 한정판으로, 선수 5명이 고른 챔피언 카드 가운데 한 장에는 금박 사인과 1~2025번의 고유 번호가 새겨진다. (사진=크림)
라이엇게임즈의 ‘리프트바운드×2025 월드 챔피언 T1 시그니처 에디션’. T1의 월드 챔피언십 6회 우승과 3연속 우승을 기념해 제작된 한정판으로, 선수 5명이 고른 챔피언 카드 가운데 한 장에는 금박 사인과 1~2025번의 고유 번호가 새겨진다. (사진=크림)
◇카드팩 대신 원하는 한 장…TCG 거래액 208배

18일 트렌드 거래 플랫폼 크림에 따르면 올해 1~7월 TCG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약 208배 증가했다. 거래량은 131배, 평균 거래금액은 59% 늘었다.

지난 7월에는 낱장인 ‘싱글카드’ 거래액이 처음으로 박스 거래액을 넘어섰다. 카드팩을 사 무작위로 뽑기보다 원하는 카드나 희귀 카드를 직접 찾는 수요가 커진 것이다.

TCG는 본래 카드를 모아 덱을 구성해 상대와 대결하는 게임이지만 최근에는 희귀 카드 자체를 소장하려는 컬렉터 시장으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같은 카드라도 발행량과 넘버링, 보관 상태에 따라 가격 차이가 커 희소성이 가치를 좌우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고가 거래가 잇따른다. 지난 2월 미국 골딘에서는 로건 폴이 보유했던 1998년판 포켓몬 ‘피카츄 일러스트레이터’ 카드가 1650만달러(약 220억원)에 낙찰돼 트레이딩 카드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지난달 중국에서는 페이커 ‘갈리오 1/2025’ 중국판이 195만위안(약 4억원)에 거래됐다.

국내에서도 지난 7월 ‘포켓몬 TCG 마리오 피카츄 P XY 프로모 카드’가 크림에서 4800만원에 거래됐다. 올해 상반기 포켓몬 TCG 거래액은 직전 반기보다 약 35배 늘었고 ‘원피스 TCG 프리미엄 카드 컬렉션 쿠마모토현 스페셜’은 발매가 대비 최고 16배에 거래됐다. 올해 1~7월 가입 당일 TCG 상품을 구매한 이용자도 106배 증가했다.

페이커 ‘1/2025’ 한글판 카드에 3억원의 구매 희망가가 걸려 있는 크림 거래 화면. 언어판별로 단 한 장뿐인 ‘1번 카드’다. (사진=크림 홈페이지 갈무리)
페이커 ‘1/2025’ 한글판 카드에 3억원의 구매 희망가가 걸려 있는 크림 거래 화면. 언어판별로 단 한 장뿐인 ‘1번 카드’다. (사진=크림 홈페이지 갈무리)
◇포켓몬 다음은 페이커…선수·기록도 수집한다

최근에는 캐릭터를 넘어 선수와 그 기록까지 수집 대상이 되고 있다.

대표 사례가 라이엇게임즈의 ‘리프트바운드×2025 월드 챔피언 T1 시그니처 에디션’이다. T1의 월드 챔피언십 6회 우승과 3연속 우승을 기념한 한정판으로, 한국어·영어·중국어 등 언어별로 1만125세트가 제작됐다. 세트마다 T1 선수 5명이 직접 고른 챔피언 카드 5장이 들어 있고 이 가운데 무작위 한 장에는 선수 금박 사인과 1~2025번의 고유 번호가 새겨진다. 팬들이 선수 사진뿐 아니라 기록과 특정 번호의 상징성까지 함께 수집하는 셈이다.

한국어판 1만125세트 가운데 5000세트는 T1 멤버십 가입자에게 배정됐고, 크림은 5125세트를 지난 8월 응모 방식으로 판매했다. 응모가 시작된 8월14일 크림에서 상품 클릭 수는 전일 대비 460%, 저장 수는 900% 뛰었다.

가장 관심이 쏠린 것은 페이커의 ‘1/2025’ 카드다. 지난달 18일 한국어판 출시 이후 크림에는 이 카드에 현재 3억원의 구매 입찰이 걸렸다. 언어판마다 ‘1번 카드’는 한 장뿐이다. 중국판 1번이 약 4억원에 거래된 만큼 업계에서는 페이커의 상징성과 한글판 ‘0001’의 희소성이 가격을 끌어올릴지 주목하고 있다.

미개봉 세트도 발매가 50만원에서 최고 223만원에 거래돼 4.5배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팬덤 시장에서 ‘누구의 카드인가’뿐 아니라 ‘몇 장뿐인가’, ‘몇 번인가’가 가격을 만드는 요소가 된 것이다.

◇카드값 뛰자 ‘진짜냐’가 중요해졌다

고가 거래가 늘면서 진품 여부와 보관 상태를 가리는 검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작은 흠집이나 훼손에도 가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스니커즈로 시작해 의류·럭셔리·테크 등으로 분야를 확장한 크림은 기존 검수 체계를 TCG에 적용하고 있다. 일본 자회사 스니커덩크의 카드 검수 노하우와 데이터를 활용해 검수를 통과한 상품만 구매자에게 배송한다.

크림은 지난해 라부부에 이어 올해 포켓몬과 원피스 등 TCG 관련 IP로 거래 영역을 넓히고 있다. 거래 영역 확대에 지난해 스니커즈 외 상품이 전체 거래액의 63%까지 늘었다.

팬덤 소비가 단순 굿즈 구매를 넘어 희소성을 사고파는 시장으로 확장하면서 TCG 역시 일부 마니아의 취미에서 하나의 수집경제로 자리 잡고 있다. 크림 관계자는 “검증된 검수 역량과 트렌드에 민감한 이용자 기반이 TCG와 같은 수집 카테고리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다”며 “희소성과 상징성을 갖춘 컬렉터블이 신뢰할 수 있는 환경에서 거래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지속 고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T1의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기념한 ‘리프트바운드×T1 2025 월드 챔피언 컬렉션’. 위쪽 시그니처 에디션은 판매 완료 뒤 개인 간 거래가 이어지고 있으며, 아래쪽 플레이어 번들은 아직 발매 전이다. (사진=크림)
T1의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기념한 ‘리프트바운드×T1 2025 월드 챔피언 컬렉션’. 위쪽 시그니처 에디션은 판매 완료 뒤 개인 간 거래가 이어지고 있으며, 아래쪽 플레이어 번들은 아직 발매 전이다. (사진=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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