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상 엔엔티(NNT) 대표
새로운 기술의 위험을 둘러싼 논쟁은 기술 발전의 전환점마다 반복돼 왔다. 과거 자동화 논쟁이 주로 생산직과 반복 업무를 중심으로 전개됐다면, 이제는 고도의 지적 전문성을 요구하는 수학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강연 사흘 전인 10월 6일, OpenAI가 자사 AI로 작성한 수학 논문 초고 722편을 한꺼번에 공개하자 수학자 단체가 OpenAI와의 협업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추상적이고 연역적인 수학은 인간의 지적 전문성이 특히 중요한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AI의 발전은 이 영역에서도 기술이 무엇을 대신할 수 있는지 다시 묻게 한다. 기존의 지식과 숙련만으로 새로운 기술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현실은 마케팅 현장에서도 낯설지 않다.
수학의 증명을 탐색하는 과정에는 일종의 ‘해킹’을 닮은 면이 있다. 여러 수학적 개념을 조합하며 해법을 찾는 것이다.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전문성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여러 분야의 개념을 하나의 증명에 엮는 일은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AI는 사람이 제한된 시간에 시도하기 어려운 범위까지 탐색을 넓힐 수 있다.
타오의 사고실험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안티프래질’에서 제시한 ‘새에게 나는 법을 가르친다’는 비유를 떠올리게 한다. 현장의 시행착오에서 나온 성과에 학계가 나중에 이론을 붙인 뒤, 마치 그 이론이 성과를 만들어낸 것처럼 순서를 뒤집는다는 지적이다. 의학에서도 실제 활용이 원리에 대한 이해보다 앞선 사례가 있다. 아스피린은 1899년부터 판매됐지만, 주요 작용 원리가 밝혀진 것은 1971년이다. 물론 이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검증까지 건너뛰자는 뜻은 아니다. 이해와 검증은 서로 다른 문제다.
마케팅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모바일과 데이터 기술의 확산은 마케팅의 실행 방식을 바꿨다. 창의적인 광고 소재로 고객과 소통하는 일에 더해, 데이터를 연결하고 고객 반응을 시험하는 기술 역량이 중요해졌다. 마케팅은 사실상 기술업의 성격을 갖게 됐다.
기술의 가치를 판단할 때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기 파괴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의 방식을 부정하고 더 나은 방식으로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스케일, 즉 확장성이다.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양을 처리하는 능력이다. AI는 광고 소재를 대량으로 만들고 다양한 조합을 시험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힌다.
여기서 타오의 논의는 마케팅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성과가 나는 이유를 사람이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가. 마케팅에서는 성과를 내는 소재가 왜 효과적인지 모두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활용할 가치가 있다. 사람이 요소 하나하나를 이해할 수 있도록 실험의 규모와 복잡성을 제한한 결과 성과가 저조해진다면, 설명 가능성 자체가 마케팅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세상의 여러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만큼, 통제된 실험에서 확인한 몇 가지 요인만으로 소비자의 행동 전체를 설명하기도 어렵다.
필자도 코카콜라를 자주 마시지만, 그 이유를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취향과 습관, 당시의 상황 등 다양하고 복잡한 이유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마케터가 몇 가지 요소로 정리한 설명이 이 선택의 이유를 온전히 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캠페인의 성공을 모델이나 카피, 집행 시점 덕분이라고 해석하더라도, 그 해석만으로 다음 캠페인의 성과를 보장할 수는 없다. 다음 캠페인을 설계할 때는 이미 시장과 트렌드가 달라져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성공을 정교하게 설명하는 데 머물기보다, 바뀐 환경에서 다시 폭넓게 시험하고 결과를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
NNT도 처음부터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회사다. 분야마다 검증 기준은 다르지만, 사람이 이해하는 방식으로만 무언가를 개선해야 한다는 전제는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자율주행차도 마찬가지고, 코딩도 마찬가지고, 제약 개발도 마찬가지고,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새가 나는 것은 공기역학을 몰라도 본능적으로 나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공기역학은 이미 존재하던 비행의 원리를 설명하는 지식이다. 그 설명이 비행의 출발점이었던 것처럼 순서를 뒤집어서는 안 된다.
◇참고할만 한 것
엔엔티(NNT)는 에이전트와 자체 솔루션을 활용한 ‘에이전틱 에이전시’를 지향하는 회사다. 삼성전자·LG전자·현대자동차·배달의민족·무신사 등과 350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했다. 조경상 대표는 우아한형제들 전략기획 담당과 숨고 공동 창업을 거쳤으며, 딜로이트컨설팅과 닐슨에서 데이터 분석 경험을 쌓았다. 애리조나대 수학·경영학 학사, 카네기멜론대 통계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