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치료법 찾던 의사에게 돌아온 질문…“상장은 언제 합니까”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November 07일, AM 07:01

[이데일리 김성진 기자] “2년 안에 상장할 수 있다면 200억원을 투자하겠습니다.”

연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이자 바이오텍 코웰바이오다임을 이끄는 송시영 교수는 투자를 구하는 과정에서 이런 제안을 수없이 들었다고 말했다. 벤처캐피탈(VC) 관심은 신약의 가능성을 얼마나 입증했느냐보다, 언제 상장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느냐가 앞섰다는 것이다.

송시영 연세대 의학대학 명예교수가 최근 연세대 의대 연구동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국내 바이오 산업의 미래에 대해 얘기하는 모습.(사진=김성진 기자)
송시영 연세대 의학대학 명예교수가 최근 연세대 의대 연구동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국내 바이오 산업의 미래에 대해 얘기하는 모습.(사진=김성진 기자)


평생 환자를 보고 신약 연구를 해온 송 교수에게 이 조건은 덥석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실험 결과가 언제 나올지, 후보물질이 다음 단계에서도 효과를 보일지 장담할 수 없는데, 기업공개(IPO)라는 단기 목표만 보고 연구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송 교수 역시 기업이 투자자에게 성과와 계획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후 제품 출시까지 10년은 족히 걸리는 신약 개발의 특성을 고려해 이를 총체적으로 지원하고 관리할 시스템이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좋은 과학이 좋은 결과를 내도록 유도할 수 있는 방향성이 필요하다”며 “좋은 과학이 임상적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시간까지는 국가가 보장을 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가 인터뷰 내내 되풀이한 주장은 바로 단지 ‘바이오 분야 자금 지원을 늘리자’는 단편적인 요구가 아니었다. 연구 성과는 있지만 아직 투자금을 회수할 단계에 이르지 못한 기업들이, 기술의 가치를 입증하기도 전에 자금난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환자를 보던 의사는 왜 바이오기업을 이끌게 됐나

송 교수는 국내 췌장암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으로, 환자를 진료하면서도 기존 치료법으로 살리기 어려운 환자들을 위해 연구를 병행했다.

“은퇴하고서도 진료하고 싶고, 환자를 보고 싶은 생각은 계속 있다. 그런데 이제껏 연구실을 20년 이상 운영하면서 얻은 것을 갖고 환자를 위해 신약 개발을 해보자고 생각한 거다. 주로 췌장암과 담도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진료실에서 느낀 한계를 연구로 풀고자 했다. 치료제를 개발하는 동시에 암을 더 일찍 발견할 방법도 찾았다.

“평생 제일 가슴에 남는 건 ‘이런 사람들을 조기 진단할 수 없을까’였다. 그래서 20여 년간 해온 연구를 바탕으로 담도암과 췌장암의 조기 진단법도 개발하고 있다.”

송 교수의 고민은 단지 치료와 연구에 머물지 않았다. 행정과 정책에도 참여하며 전방위로 뛰었다. 송 교수는 2010~2016년 연세의료원 의과학연구처장을 맡았고 산학협력단장도 지냈다. 2016~2018년에는 연세대 의과대학장 겸 의학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17년에는 제12기 보건복지부 보건의료기술정책심의위원장을 맡았으며, 2019년 출범한 제13기 위원회에서도 위원장을 맡았다.

뿐만 아니라 ‘국가 바이오헬스산업 혁신전략 추진위원회 민간위원장’,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시범사업 추진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산업 발전의 구체적인 방안도 함께 모색했다. 이런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병원에서 나오는 연구들을 신약개발로 연결시키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송 교수는 “회사를 만들게 된 동기는 내가 회사를 하려던 게 아니었다. 당시에는 최고경영자도 아니었다. 연구 행정을 하면서 제일 안타깝게 느꼈던 게, 병원에서 의사들이 환자 유전자를 분석해도 표적만 발굴한다는 거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표적에 대한 특허를 아무리 내도 아무도 안 사가는데, 히트나 리드까지 만들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들어온 돈을 연구자에게 연구비로 지급하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히트와 리드는 신약 개발 초기에 약효 가능성을 확인하고 후속 연구를 진행하는 물질을 뜻한다. 치료 표적의 발견에서 멈추지 않고, 기업이 개발을 이어받을 수 있는 단계까지 연구를 진척시키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연구를 다음 단계로 연결할 조직을 유지하는 데도 돈이 필요했다. 송 교수는 대학의 지원과 초기 투자만으로는 연구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결국 직접 경영을 책임지고 투자자를 찾아 나섰다.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만든 회사에서, 이제는 회사의 생존부터 고민하게 된 것이다.



◇서로 어긋나는 신약 개발과 투자의 시간

“바이오 산업은 5년, 10년, 15년이 걸리는데 국내 투자 회수 기간은 기껏해야 5~7년이다. 이 두 기간에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투자자들에게 기다려 달라고 할 수는 없다.”

송 교수가 보는 핵심은 바이오 산업의 주기와 투자자들의 투자금 회수 주기가 어긋난다는 데 있다. 투자사 역시 돈을 회수해야 다음 투자금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 양보를 요구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는 이 간극이 기업의 연구 방향까지 바꾼다고 지적했다. 충분한 검증보다 투자 유치와 상장에 필요한 일정을 맞추는 일이 우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도 투자자를 만나 비슷한 요구를 받았다고 했다.

“어느 투자자에게 갔더니 ‘대표님, 숫자를 만들어 오셔야죠’라고 했다. 기업으로서 살려면 성과를 가시화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만나면 전부 숫자를 요구하는 거다. 전임상은 언제, 임상 1상은 언제 하느냐는 거다. 그 과정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모르는 건데 말이다.”

그가 우려하는 것은 일정에 쫓겨 과학적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하지 못한 채 임상에 진입하는 상황이다. 후보물질을 걸러내는 데에도 시간과 돈이 필요하지만, 당장 보여줄 성과를 요구받으면 이 과정이 밀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파이프라인 다섯 개 중 네 개를 떨어뜨리더라도 ‘이건 가능성이 있다’고 확인할 때까지는 돈을 줘야 하는 거다. 그중 하나가 크게 성공할 물질이라면 그때 돈을 투입하는 선별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후보물질 다섯 개 가운데 하나만 남았다고 반드시 실패는 아니다. 가능성이 낮은 물질을 버리고 유망한 하나에 집중할 근거를 얻었다면 필요한 진전이다. 그러나 임상 진입 건수나 상장 시점만으로 성과를 판단하면 이런 과정의 가치를 놓치기 쉽다.

송 교수는 기업을 평가할 때 “이 약이 왜 환자의 미충족 수요를 해결할 수 있는지, 그 논리가 맞는지를 봐야 한다. 두 번째는 그걸 실현할 기술과 역량이 있는지, 세 번째는 지금까지 나온 결과가 얼마나 가능성을 보여주는지를 보고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장할 수 있는 날짜를 묻기 전에, 환자에게 필요한 약을 만들 가능성부터 따져야 한다는 뜻이다.



◇바이오 산업 성패 기로…정부가 나서야

“내년에도 제약·바이오 산업을 위한 혁신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는 이상 미래는 없다고 생각한다.”

송 교수는 현재 국내 바이오 산업이 처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혁신적인 정책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지 자금을 지원하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보건의료 연구개발과 산업 육성을 통합적으로 기획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헬스케어 전체를 하나로 보고, 연구 과제를 연속성 있게 개발해야 한다.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자는 것”이라며 “산업의 끝단도 볼 수 있어야 하고 임상 현장도 봐야 한다. 기초연구를 하는 사람도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고 했다.

당장 한 가지 정책을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보건의료 연구개발과 산업 정책을 함께 기획하는 통합 조직을 만들겠다”고 답했다. 부처별로 나뉜 지원을 연구부터 임상, 사업화까지 이어지는 체계로 재편해야 한다는 취지다.

정책자금은 유망한 기술이 가능성을 입증하는 중간 단계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기 임상처럼 성과가 가시화된 단계뿐 아니라, 후보물질을 검증하고 걸러내는 과정에도 자금이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좋은 연구 결과가 좋은 성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입증하려면 시간과 자금이 필요하다”며 “기존 투자자와 새로 들어오는 투자자 사이에 손바뀜이 일어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모든 기업의 생존을 보장하자는 뜻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송 교수는 지원금으로 존속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 기업은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좋은 과학이 임상적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시간까지는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능성을 검증할 기회는 주되, 그 결과를 바탕으로 지원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이 같은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국내 바이오 산업의 기반이 무너질 것을 우려했다. 송 교수는 “중간 단계의 벤처기업들은 다섯 명이든 열 명이든 몇 년을 끌어온 기업들이다. 그동안 팀워크가 만들어진 거다. 그런데 프로젝트 하나가 무너지면 이 팀워크 생태계가 다 산산조각이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력 양성과 기업 육성을 따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대학에서 연구자를 길러도 이들이 경험을 쌓을 기업이 사라지면 산업의 인력 기반까지 약해진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벤처기업은 좋은 연구 결과가 좋은 성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계”라며 “그걸 입증할 시간과 자금이 필요하고, 이 중간에 돈이 들어가지 않으면 가능성을 다 끊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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