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진 서울대 로보틱스연구소장 겸 기계공학부 교수는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로봇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조건으로 ‘로보틱스 플라이휠’을 제시했다. 플라이휠은 회전력을 유지하는 관성 바퀴다. 현장에서 확인한 문제를 설계에 반영하고, 개선된 로봇을 다시 사용하면서 성능을 높이는 선순환을 뜻한다.
AI 모델의 성능이나 데이터 양만으로는 이 바퀴를 돌릴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로봇 몸체를 설계하고 제작할 역량, 현장에서 시험할 여건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조 교수는 오는 12일 제13회 이데일리 글로벌 AI 포럼(GAIF 2026)에서 피지컬 AI의 발전 방향을 소개할 예정이다.
조규진 서울대 로보틱스연구소장 겸 기계공학부 교수 (사진=신영빈 기자)
조 교수가 말하는 선순환의 출발점은 ‘문제 정의’다. 로봇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맡을지 먼저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생성형 AI는 클라우드의 모델을 불러와 사용할 수 있지만 로봇은 실제 현장에 몸체가 있어야 한다. 크기와 무게, 힘, 속도, 가격이 달라지면 할 수 있는 일도 달라진다.
로봇 손이 대표적이다. 손가락 수를 늘리고 구동기를 추가하면 다양한 동작이 가능하지만 구조는 복잡해진다. 손가락의 힘을 키우려면 모터의 크기와 무게도 고려해야 한다. 성능을 높이려다 다른 성능이 떨어지는 상충관계가 생기는 것이다.
조 교수는 물체를 쥔 채 버텨야 하는 작업이라면 순간적으로 큰 힘을 내는 능력보다 물체를 안정적으로 잡아두는 능력이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떤 일을 시키느냐에 따라 적절한 손가락 수와 힘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사람의 손을 얼마나 닮았는지가 아니라 맡은 일을 얼마나 잘 해결하는지가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
휴머노이드에도 같은 잣대를 적용했다. 조 교수는 “반드시 휴머노이드가 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사람과 다른 형태라도 현장에서 필요한 일을 해낸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그는 휴머노이드 시장도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커지기보다 제조 현장과 가정에서 가능한 작업부터 점진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봤다.
그는 “휴머노이드도 한 번에 시장이 확 늘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상용화 시점을 둘러싼 전망 차이도 각자가 염두에 둔 작업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난제를 해결한 뒤 보급하기보다 지금 가능한 작업을 찾아 적용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머리만 좋아선 못 잡는다…‘몸’에도 지능을
조 교수가 주목하는 기술은 ‘물리 지능’이다. AI의 판단에만 의존하지 않고 소재와 구조, 기계적 작동 원리로 로봇 몸체가 환경에 적응하도록 하는 개념이다.
단단한 로봇 손으로 물체를 잡으려면 손가락 위치를 정밀하게 제어해야 한다. 반면 유연한 손은 물체에 닿으면서 형태에 맞춰 변형될 수 있다. 물체의 크기와 위치가 조금 달라도 손의 변형이 차이를 흡수하는 것이다. 조 교수는 “재료가 유연하면 하나하나 정밀하게 제어하지 않아도 환경에 적응하기 좋아진다”고 설명했다.
물론 유연성이 늘 유리한 것은 아니다. 정밀한 작업에서는 불리할 수 있어 실제 용도에 맞춘 설계가 필요하다. 기존 자동화 설비는 정해진 자리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는 데 강하지만 생활공간의 로봇은 위치와 크기가 제각각인 물체를 다뤄야 한다. 몸체가 물리적으로 대응하면 인식과 계산, 제어에 드는 부담을 줄이고 오류의 영향도 낮출 수 있다.
조 교수는 물리 지능을 활용하면 “계산을 덜 하고도 잘되는 로봇”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손 움직임을 보조하는 엑소글러브에도 이런 접근을 적용했다고 소개했다. 몸체 자체가 환경 변화에 대응하도록 설계하면 AI가 모든 움직임을 일일이 계산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설명이다.
◇80여명 연구진의 목표…사람을 위한 피지컬 AI
이 같은 기술을 실제 생활에 연결할 연구거점으로 서울대 로보틱스연구소가 나섰다. 지난 8월 18일 문을 연 연구소는 정부의 국가연구소(NRL 2.0) 사업에 선정돼 최대 10년간 지원받는 로봇 연구거점이다. 생활지원·웨어러블·체내 의료로봇 등을 연구하며 ‘인간중심 피지컬 AI’를 지향한다.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 모든 일을 처리하는 미래보다, 지금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일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방향이다.
연구소에는 공학과 의학, 보건학, 뇌인지과학, 의류학, 사회과학 등의 참여·연계 교수 80여명이 함께한다. 사람을 돕는 로봇은 작동 성능뿐 아니라 사용자의 신체적 특성, 생활환경과 안전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로봇의 설계·제어와 실제 활용 효과를 검증할 전문성을 결합하려는 것이다. 예컨대 착용형 로봇은 힘이 얼마나 강한지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사람의 움직임에 맞춰 반응하고 일상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서울대병원과 연계해 개발 및 임상 검증을 추진하고 서울대기술지주와는 사업화 지원에 협력할 계획이다. 연구실에서 만든 기술이 사용자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고 제품이나 서비스로 이어질 가능성을 살펴보겠다는 취지다.
개별 연구실이 모든 제작 인력과 시험 환경을 갖추기 어려운 만큼 연구소는 공동 연구 기반도 마련한다. 서로 다른 분야의 연구자가 아이디어를 실제 로봇으로 구현하고 검증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역할이다. 다만 세부 연구과제와 개발 일정은 아직 구체화하는 단계다.
조 교수는 “연구소를 중심으로 사람을 위한 로봇을 연구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 것”이라며 “이전에 각자 못 하던 것을 이제는 힘을 합쳐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