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View]장기채 발행은 부차적 수단

재테크

이데일리,

2023년 12월 02일, 오전 06:00

[김선욱 IBA홀딩스 대표·미국공인회계사] 지난 10월 29일 대통령실과 여당, 정부가 모여 높은 변동금리 대출비중 축소를 위해 장기고정금리 대출을 확대하고 이를 위해 커버드본드를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름도 생소한 커버드본드는 약 250년전 유럽서 최초로 도입된 일종의 은행채인데 은행에 대한 국민정서가 요즘 좋지 않다는 건 알지만, 전적으로 민간 은행이 자체적으로 발행 하는 채권인 커버드본드를 은행들보다 당정이 먼저 나서서 활용하겠다고 한 것은 어색한 일이다. 아마 당정은 고정금리 대출 확대를 위해서 커버드본드나 주택저당증권(MBS) 같은 장기채권시장이 활성화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렇게 발표한 것 같은데, 장기채권시장이 활성화돼야만 장기고정금리 대출 확대가 가능하단 믿음은 정확한 사실이 아니다.

정부 여당은 장기고정금리 주담대 확대를 위해 은행이 현재 주택금융공사가 장기채권(MBS) 발행해서 장기고정금리 상품이 보금자리론을 공급하는 사업모델을 채용할 것이라 기대해선 안된다. 만약 은행이 주금공처럼 기계적으로 장기채권 발행을 동반하는 장기고정금리 주담대 공급 모델을 채택한다면, 요즘처럼 채권금리 변동성이 심한 시기에 심각한 금리(시장)리스크에 노출 되고 수익성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은행이 금리리스크 노출이 큰 장기고정금리 주담대를 확대하기 위해 채택해야 하는 안정적인 사업모델은 커버드본드 등 장기채권을 발행해서 장기고정금리대출을 공급하는 게 아니라 일상적으로 유치하는 저원가성 예금으로 대출을 공급하고 이를 만기까지 보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장기고정 대출금리는 현재 혼합형 대출금리와 유사한 낮은 수준으로 산정해도 무방하다. 은행입장서 저원가성 예금만 충분한 규모로 유지된다면 장기채권 발행 없이 장기고정금리를 운용해 만기보유 해도 금리 리스크 문제는 없다. 저원가성 예금은 입출금이 자유롭지만 뱅크런이 아닌 이상, 고객 전체로 볼 때 단번에 인출되는 경우는 없고, 급여 수령 등 기능성 목적으로 쓰이기 때문에 특정 만기 없이 (비만기성) 오랜기간 항상 일정 잔액이 유지되며, 시장금리가 오른다 해도 예금금리가 오르지 않는 초저리의 장기 고정금리 조달재원이다. 게다가 대출이 아무리 30~40년 만기의 장기고정금리라도 이사, 갈아타기로 인한 중도상환 감안시 실제 대출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아 주담대 평균 듀레이션은 10년 미만이다.

문제는 장기고정금리대출의 금리, 재조달(유동성) 리스크는 평상시엔 나타나지 않다가, 안정적인 재원이라 믿고 대출로 내어준 저원가성 예금이 이탈하면 위협적이 된다는 데 있다. 지난 3월 파산한 미국의 실리콘밸리 은행(SVB)를 보자. 코로나 시기에 SVB는 전통적 상업은행 방식대로 저원가성 예금을 국채, MBS 같은 장기고정금리자산에 투자해서 운용했다. 미국의 대표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를 포함해 많은 미국은행들이 이런 관행을 따랐다. SVB 부채의 대부분이 저원가성 예금으로 장기고정금리부채 성격이기 때문에 이런 투자가 자산부채 만기관리 측면서 문제는 없었다. 투자 중 연준이 금리를 급격히 올렸지만 인상의 영향을 받지 않아 이자비용이 거의 없는 저원가성 예금을 운용했으므로 이자마진상 이익이 나는 구조였다.
문제는 연준의 금리인상과 스타트업 기업의 불황으로 저원가성 예금이 이탈하면서 생겼다. 당시 SVB는 금리급등으로 인해 투자중인 장기고정금리자산에 미실현손실이 컸는데, 이탈하는 유동성을 마련하고자 이 자산을 시장매각 하면서 막대한 미실현 손실을 실현한다. 저원가성 예금이탈이 잠재됐던 금리 리스크를 수면 위로 드러낸 것이다.

국내 은행은 금리상승 상황에서 저원가성 예금이탈에 대응하기 위해 SVB처럼 자산을 팔아서 유동성 마련할 필요는 없지만, 이탈분을 메꾸기 위해 정기예금, 시장성 예금, 은행채를 고금리에 신규 발행해 유동성을 조달해야만 한다. 저비용성의 비만기성 예금이 감소한 자리에 고비용성의 단기부채가 채워지면서 마진악화와 금리리스크, 자금을 재유치, 차환해야 하는 재조달 리스크에 노출된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선 단기부채 발행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긴 고정금리 기간과 대출만기로 인해 금리와 재조달 리스크의 진원지로써 현재 보유 중인 장기고정금리 주담대를 콕 집어서 이를 담보로 듀레이션, 유동성 매칭하는 장기차입을 일으켜 금리, 재조달 리스크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자금이탈에 대응하는 편이 났다.

매각 아닌, 담보부 차입 형태가 돼 손실실현이 없다. 바로 이것이 커버드본드다. 이렇게 하면 발행이 집중된 중단기 시장성수신 시장에 압력을 덜 주게 되므로 타 기관의 자금조달에 민폐도 덜 끼친다. 따라서 국내 은행은 저원가성 예금을 조달재원으로 한 장기고정금리대출 운용을 기본모델로 하되, 비상 상황에 대비한 리스크관리 수단으로 커버드본드를 때때로 발행하는 시스템을 동반하여 도입해야 한다.

이시간 주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