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장 연임 못할라" 충성경쟁 전락한 경기도 '책임계약평가'

사회

이데일리,

2024년 5월 04일, 오후 02:10

[수원=이데일리 황영민 기자] 경기도가 산하 공공기관 사업 평가를 위해 도입한 ‘책임계약 평가’가 기관장들을 향한 충성경쟁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3월 도정열린회의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발언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김 지사는 참석한 공공기관장들을 향해 “결과·성과에 따라 필요하면 조치를 하겠다. 임기는 하라는 일이 제대로 지켜질 때 임기라고 여러 차례 얘기한 바 있다“고 경고했다.(사진=경기도)
4개 기관이 제시한 책임 목표에 대한 경기도민 온라인 투표 등으로 기관 성과를 평가하겠다는 것인데, 중복투표가 가능해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기관의 경우 기관장 임기가 반년 남짓 남은 상황이라 연임을 위해 상당수 직원이 투표에 동원되면서 행정업무 마비를 호소하는 실정이다.

4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는 오는 6일까지 경기도민이 경기도 공공기관의 주요 사업 성과를 직접 평가하는 ‘책임계약’ 온라인 평가를 진행한다.

책임계약 평가는 도민과 전문가가 정원 200명 이상인 경기주택도시공사(GH), 경기신용보증재단(경기신보), 경기문화재단,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경과원) 등 4개 기관장이 제시한 2~3개의 책임 목표에 대해 2023년 한해 성과를 평가하는 제도다. 도청과 전문가가 실시하는 서면 평가(실·국 평가 30%, 전문가 평가 20%)와 도민이 참여하는 온라인 투표 및 오프라인 투표(50%)로 나뉜다.

서면평가와 투표를 합산한 결과 1등을 차지한 기관에는 도지사 표창과 특별정원 증원 등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지난 16일 개설된 책임계약 투표 홈페이지를 보면 이날 오후 1시 20분 기준 경과원이 2만4713표로 1등이었고, 이어 경기신보 2만4229표, GH 2만3032표, 경기문화재단 2115표 순이었다.

◇경공노총 “직원 동원, 중복투표로 신뢰성 잃어”

이 같은 경기도의 공공기관 책임계약 평가는 시작과 동시에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도민 온·오프라인 투표가 시작된 다음날인 지난달 17일 경기도공공기관노동조합총연합(경공노총)은 성명서를 내고 “전시행정 쇼로 전락한 책임계약 평가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경기도 책임계약 평가 온라인 홈페이지 캡쳐. 4일 오후 1시 20분 기준 1등은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이 차지하고 있다. 총 투표수는 9만7000여표로 집계됐다.
경공노총은 “도민 평가 수의 대부분이 공공기관 직원이나 이해관계자가 참여해 만들어 낸 숫자로 보인다”며 “공공기관 직원 동원을 통해 마치 책임경영 평가가 도민들의 뜨거운 호응이 있었다는 모양을 만들고자 하는 통에 도민들을 위해 쓰여야 할 행정력은 발목을 잡히고, 누구도 보지 않는 기관별 동영상 제작·평가사이트 개발 등에 막대한 혈세가 소모됐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투표 신뢰도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경공노총은 “온라인 투표 참여 방법에 ‘1일 1회 중복참여 가능’하다고 공지돼 있으나, 하루에 20회 이상 참여했다는 증언이 들리고, 본인 인증 후 여러번 클릭하면 다중카운트 되는 버그가 있었다. 실제로 참여해보니 중복참여가 가능했다”며 “온라인 투표의 신뢰도는 이미 상실됐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현재 책임계약 평가는 시스템 오류를 수정했지만, 여전히 이미 투표한 사람이라도 하루에 한 번씩은 투표가 가능한 상태다.

이날 오후 1시 20분 기준 책임계약 평가 온라인 총 투표수는 9만7000여표로 경기도가 지난 1월 18일부터 2월 19일까지 한달간 진행한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새이름 대국민 공모전 제안건수 5만2435건보다 4만여건 이상 많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 대국민 공모전 대상의 상금은 1000만원이지만, 책임계약 평가 투표는 참여자 중 100명을 추첨으로 선발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제공한다.

◇“임기는 하라는 일 지켜질때까지만” 김동연 엄포에, 연임 노리는 기관장 사활

책임계약 평가에 참여하는 공공기관 직원들 내부에서도 실시간 투표 개황에 따른 피로도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크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관 직원은 “홈페이지에서 실시간으로 투표 결과가 공개되고 이에 따른 순위가 바뀌는 것이 보여지니 아무래도 윗선에서 친인척을 동원해 투표하라는 압박들이 있다”며 “계속 투표 참여를 독려하다보니 내 업무를 할 시간이 모자란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다른 기관 직원은 “아무래도 기관장 임기가 얼마 남지 않다 보니 이번 평가에서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연임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 모양”이라며 “김동연 지사가 얼마 전 기관장들에게 성과에 대한 부분을 질타한 적이 있어 더욱 요란스럽게 진행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지난 3월 27일 도정열린회의에서 “28개 공공기관은 직원이 7000명에 이르고, 예산이 8조원이 넘는 도정의 아주 중요한 축이다”라며 “공공기관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여러 가지 지침을 만들었고 이제는 도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야 할 시점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결과·성과에 따라 필요하면 조치를 하겠다. 임기는 하라는 일이 제대로 지켜질 때 임기라고 여러 차례 얘기한 바 있다”고 경고했었다.

현재 온라인 투표 1·2위를 다투고 있는 경과원 강성천 원장과 경기신보 시석중 이사장의 임기는 내년 1월까지다. ‘임기는 하라는 일이 제대로 지켜질 때 임기’라는 김 지사의 엄포 이후 진행된 책임계약 평가인만큼 각 기관의 경쟁은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별증원도 민감한 화두다. 만성적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경기도 공공기관들의 정원은 ‘공공기관 조직 및 정원관리 지침’에 따라 경기도 공무원 정원 증가율 범위 내에서만 증원이 이뤄지고 있다. 이번 평가에서 1등을 하면 정원도 늘어나기 때문에 직원들은 더욱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지적들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책임계약 평가 도입 취지는 공공기관에서 도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사업들을 자발적으로 목표 설정해 달성하는 노력해보자는 것”이라며 “어떤 기관의 경우 목표 대비 200% 이상 성과를 달성해도 도민들이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도민들에게 이런 성과를 홍보하기 위해 온라인 투표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도민 투표 외에도 전문가 평가나 달성도 등도 종합적으로 평가해 신뢰성을 확보하도록 하고 있다”며 “이 평가를 통해서만 정원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탁월한 성과를 낸 기관에 어느 정도 인센티브를 준다는 의미이다. 이번 평가를 못하면 정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