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금을 징수하려다 '대혁명'을 촉발한 역사적 회의 [역사&오늘]

해외

뉴스1,

2024년 5월 05일, 오전 06:00

프랑스의 삼부회(출처: Auguste Couder, 유화(1892-1894), Centre de musique Baroque Joconde database: entry 000PE012268,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1789년 5월 5일,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가 삼부회를 소집했다. 심각한 재정 위기에 직면해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회의를 통해 기득권층의 오랜 절대 권력에 대한 불만과 사회 계층 간의 갈등이라는 불씨가 본격적으로 타올랐고, 이는 결국 프랑스 대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삼부회는 성직자, 귀족, 평민으로 구성된 프랑스의 전통적인 의회였다. 1302년 4월 10일 필리프 4세가 최초로 소집했다. 삼부회 소집 대상은 성직자, 귀족, 그리고 제3신분인 평민들이었다. 주요 기능은 국왕의 세금 징수에 대한 동의였고, 이는 사실상 새로운 국왕에 대한 선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절대왕정이 확립된 이후 이러한 기능은 무의미했고, 1614년 이후 소집되지 않아 사실상 삼부회는 유명무실했다.

루이 16세는 즉위한 이후 재정 악화라는 막대한 문제에 직면했다. 거듭된 전쟁과 선대로부터 누적된 과도한 지출로 인해 프랑스는 파산 직전에 놓여 있었다. 이에 그는 면세 특권을 누리던 귀족과 성직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삼부회를 이용하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삼부회는 루이 16세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세 신분은 표결 방식을 놓고 갈등을 빚었고, 특히 평민들은 머릿수 표결을 주장하며 기존의 신분 질서에 도전했다. 결국 평민들은 테니스 코트에서 맹세를 하며 '국민의회'를 구성하고, 루이 16세의 권위에 맞섰다.

삼부회 소집은 프랑스 대혁명의 촉매제가 됐다. 오랜 절대 권력에 대한 불만과 사회 계층 간의 갈등이라는 불씨가 삼부회를 통해 드러나 걷잡을 수 없이 분출했다. 루이 16세는 삼부회 소집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려 했지만, 오히려 혁명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루이 16세의 삼부회 소집은 프랑스 역사에 중요한 획을 그었다. 이는 절대 권력에 대한 도전과 새로운 사회 질서를 향한 열망의 시작이었다. 대혁명을 통해 프랑스는 근대 국가로 거듭났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