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美반전시위 진앙' 맨해튼 대학가, 경찰 강제해산에도 불씨 여전

해외

뉴스1,

2024년 5월 05일, 오전 08:01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컬럼비아대 학생 및 교직원들이 3일(현지시간) 학교에 입장하기 위해 보안요원들로터 학생증 등 대학 신분증 확인을 거치고 있다.
"지금 시위대는 그들의 메시지를 잃어버렸다" vs "팔레스타인의 자유를 위해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미국내 대학가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침공에 반대하는 반전 시위가 확산하며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내 반전 시위의 진앙으로 평가받는 뉴욕 맨해튼내 대학들은 대학 및 경찰 당국의 강제 해산의 여파가 지속되고 있었다.

뉴스1이 3일(현지시간) 찾은 맨해튼내 컬럼비아대와 뉴욕대(NYU), 뉴스쿨대는 경찰과 대학 보안요원들이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다.

이들 대학 학생 및 교직원들은 학생증이나 교직원증 등의 확인을 거쳐야만 캠퍼스내로 입장이 허가됐다. 단순 방문객은 아예 입장 자체가 불가했고, 교직원 등과 약속을 잡고 온 방문객들도 대학 본부의 확인절차를 거치기 위해 밖에서 30분 이상 대기해야만 했다.

한 아시아계 대학원생은 학생증을 통한 전자시스템 입장이 계속 거절되자, 보안 요원들에게 항의하다 끝내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이 대학원생은 뉴스1에 "왜 거절됐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며 "캠퍼스 입장 절차가 너무 불편하다"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최근 경찰이 이들 대학의 텐트 시위대에 대한 강제해산에 나선 이후였던 만큼 각 대학내 '텐트 농성장'은 대부분 사라진 상황이었다. 한때 시위대에 의해 점거됐던 컬럼비아대 해밀턴 홀 주변은 경찰들이 배치된 채 직원들이 무언가 정리를 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앞서 뉴욕경찰(NYPD)은 지난달 30일 미국내 반전시위를 이끌었던 컬럼비아대 시위대에 대한 강제 해산에 나서 컬럼비아대 및 인근 뉴욕시티칼리지 학생 약 300명을 연행했다.

NYPD는 이날 오전에도 뉴욕대와 뉴스쿨대의 요청으로 두 대학 건물 앞에서 각각 텐트 시위를 벌이던 13명과 43명 등 총 56명을 체포한 것으로 전해졌다.

컬럼비아대 캠프 시위에 참여했다고 밝힌 2명의 대학생이 3일(현지시간) 컬럼비아대 앞 신호등 기둥에 지난 4월30일 당시 헤밀턴홀 점거하고 있던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던 과정에 경찰이 총을 발사한 것 등에 항의하는 전단지를 붙이고 있다.이들은 사진 촬영에 응하면서도 얼굴을 가렸다.

◇텐트 농성장은 사라졌지만, 반전 시위 불씨는 여전…"끝까지 싸울 것"

각 대학에서 텐트 농성장은 사라졌지만, 반전 시위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각 대학내에 국한된 시위를 넘어 세(勢) 규합 양상을 보이는 등 언제든 불길이 커질 수 있는 흐름도 엿보였다.

컬럼비아대에 텐트 시위에 참여했다고 밝힌 2명의 여대생은 경찰의 강제 해산을 비판하는 전단을 대학 입구 앞 신호등 기둥에 붙이고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이들은 "(강제 해산 과정에) 경찰이 평화롭게 시위하던 시위대를 공격하면서 총까지 쐈다"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경찰당국은 이날 지난 4월30일 대학 건물을 점거하고 있던 컬럼비아대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는 과정에 한 경찰관이 실수로 총을 발사했다고 시인했다. 해당 발사로 인한 인명 피해는 전혀 없었다고 경찰당국은 밝혔다.

이 여대생들은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 중 반(反)유대주의를 얘기하는 등 일부의 일탈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위 참가자는 평화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고통받는 주민들의 인도주의적 위기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며 "일부의 일탈을 빌미로 평화로운 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경찰이 강제 철거에 나선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우리는 그동안 반차별, 반인종주의를 주장해 왔고, 시위 참가자 중에선 유대인 학생들도 있다"면서 "우리의 시위는 특정 민족을 배척하는 게 아니라 모든 민족이 평화롭게 공존해야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대(NYU) 팔레스타인연대연합(PSC)이 주도하는 시위대 1000명가량이 3일(현지시간) 폴슨센터 앞에서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후 4시쯤 뉴욕대에선 린다 밀스 총장의 사무실이 있는 폴슨 센터 앞에 1000명 안팎의 시위대가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젊은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외부에선 온 것으로 보이는 인원들도 눈에 띄었다.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NYU 팔레스타인연대연합(PSC) 소속의 한 학생은 뉴스1에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NYU 학생과 직원, 동문, 학부모 등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시위대는 가자 전쟁의 종식과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원 중단 등을 촉구하는 한편, NYU에 △대학의 투자내역 공개 △이스라엘과 관련된 회사 매각 △NYU 텔아비브 캠퍼스 폐쇄 △캠퍼스에서 경찰 철수 △친팔레스타인 시위대에 대한 징계 사면 등을 요구했다.

1시간가량 시위를 벌이던 시위대는 진압장비를 갖춘 경찰들의 호위 속에 가두행진에 나섰다.

NYU 3학년생이라고 밝힌 산체스는 "단지 목소리를 높인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에게 억압과 폭력을 가하는 뉴욕시와 미국 정부에 화가 난다"며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옹호하고 가자지구의 평화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대 폴슨센터에서 시위를 하던 시위대들이 3일(현지시간) 경찰의 호위 속에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반시온주의 소수 유대교 종파인 '네투레이 카르타(Neturei Karta)' 유대계 인사들도 시위에 동참했다.

네투레이 카르타는 초정통파 유대교인 '하레디'의 일파로, 시온주의(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하고 이스라엘 국가 설립을 부정한다. '메시아'가 강림해야만 비로소 유대 민족의 국가가 회복된다고 믿으며 팔레스타인에 대한 비인도적 행위에도 반대하고 있다.
네투레이 카르타 소속 울프 쉬프는 "시온주의자들은 유대교를 정치에 이용하고,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미 육군 베테랑 출신 중국계 미국인인 윌리엄(48)은 '나는 집단학살에 연루되지 않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에 동참했다. 그는 "어떤 국가보다 인류가 더 중요하고, 생명이 더 소중하다"고 말했다.

반시온주의 소수 유대교 종파인 '네투레이 카르트' 소속 유대계 인사들이 3일(현지시간) 뉴욕대 폴슨센터 앞에서 열린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반전시위 비판론도 적지 않아…"시위대는 그들의 메시지를 잃었다"

반전 시위에 대한 비판 여론도 적지 않았다. 반전 시위에 대학생들이 아닌 외부인들이 관여하면서 폭력적·선동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게 요지였다.

컬럼비아대 여대생들이 전단을 붙이고 간 맞은편 신호등에선 유대계로 보이는 인사들이 전단을 뜯어 쓰레기통에 버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곳에선 잠시 뒤 빌 웨버 등 공화당 소속 뉴욕주 주상원의원 3명이 컬럼비아대 반전 시위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들은 시위대에 컬럼비아대와 관련이 없는 외부인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고 지적하는 한편, 시위대에 대한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네마트 샤피크 컬럼비아대 총장의 즉각적인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는 배워야 하고,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대학내 안전에 대한 청문회가 있어야 하고, (관련된) 사람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빌 웨버(왼쪽에서 2번째) 등 공화당 소속 뉴욕주 주상원의원 등이 3일(현지시간) 컬럼비아대 앞에서 네마트 샤파크 총장의 즉각적인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컬럼비아대 학생은 "반전 시위의 취지엔 공감하지만, 시위로 인해 수업이 취소되는 등 불편한 일들이 많이 생겼다"면서 "시위를 하더라도 다른 학생들의 권리를 지켜주면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NYU 학생의 학부모라고 밝힌 션은 "초기에 시위대는 '평화'라는 좋은 메시지를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다소 폭력적으로 변질됐고 반유대주의를 거론하는 등 자신들이 주장하던 메시지도 잃고 있다"며 "그들의 언어가 가끔 하마스의 주장처럼 들리기도 한다. 시위대가 하마스처럼 말할 때 그것이 평화로운 시위라고 하긴 어렵다"라고 말했다.

NYU에서 열린 대규모 시위 때엔 유대계로 보이는 소수의 인원이 시위대를 향해 "당신들은 하마스 지지자"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시위대는 이들을 향해 야유를 보냈지만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진 않았다. 한 백인 남성은 시위대가 길을 막고 있다고 항의하며 시위대와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뉴욕대 시위에 참여한 한 대학생이 3일(현지시간) 열린 집회에서 뉴욕대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에 돈을 지원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는 가운데, 인근 신호등에 보행자들에게 길을 건너지 말라는 정지 신호가 들어와 있다.


◇11월 대선 앞두고 젊은 층 표심 촉각 속 학생들 초점은 엇갈려


한편,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간 전쟁 및 반전 시위가 대선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대학생들의 초점은 엇갈리는 양상이었다.

반전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은 대체로 친(親)이스라엘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고 있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비판론을 쏟아내며 바이든 대통령의 향후 대처를 보면서 투표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뉴스쿨대 앞에서 만난 로버트는 "만약 바이든 대통령이 지금처럼 친이스라엘 행보를 보이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계속한다면 제 표를 얻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NYU 학부생이라고 밝힌 마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선택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에 대한 계속된 무기 지원으로 전쟁을 지속시키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위에서 한발 떨어져 있는 일반 학생들은 '경제'에 더 무게를 뒀다.

컬럼비아대 간호대학원을 다닌다고 밝힌 산드라는 "저는 경제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며 "우리가 사회적인 문제들을 위해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선 경제가 정말 좋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느 후보를 지지하느냐는 물음엔 "저는 무당층"이라고 답했다.

NYU 북스토어에서 만난 필립 샤프는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의 주장에 많은 부분 공감하지만, 그것이 제가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요인이 되진 않을 것"이라며 "지금처럼 고물가 시대에 중요한 것은 경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유대계로 보이는 인사 등이 3일(현지시간) 경찰의 강제해산에 항의하는 반전 시위대가 컬럼비아대 입구 앞 신호등 기둥에 붙인 전단지를 뜯어 버리고 있다.


gayunlove@news1.kr